그림이 있는 시 - [기다렸으므로 막차를 타지 못한다] / 박 남 준
작성자 정보
- 자작나무숲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664 조회
- 목록
본문
[ 기다렸으므로 막차를 타지 못한다 ] -- 박남준
.
남은 불빛이 꺼지고 가슴을 찍어 내리듯
구멍가게 셔터문이 내려지고
얼마나 흘렀을까
서성이며 발 구르던 사람들도 이젠 보이지 않고
막차는 오지 않는데
언제까지 나는 막차를 기다리는 것일까
춥다 술 취한 사내들의 유행가가 비틀거리다
빈 바람을 남기며 골목을 돌아 사라지고
막차는 오지 않을 것인데 아예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것처럼
발길 돌리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일 같은지
막차는 오지 않았던가 아니다
막차를 보낸 후에야 막차를 기다렸던 일만이
살아온 목숨 같아서 밤은 더욱 깊고
다시 막차가 오는 날에도 눈가에 습기 드리운 채
영영 두발 실을 수 없겠다.
.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창작과비평사, 1995
-----------------------------------------------------------------------------------
산다는 것은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일 같다는,
막차를 보낸 후에 막차를 기다렸던 일이 살아온 날들 같았다는,
시인의 지나온 날들에 대한 가슴아린 고백과 헛헛함이 짙게 느껴지는 시.
텅 빈 역사에 남아 꺼진 불빛 아래 더욱 깊어진 밤을 두르고 서서
기다리는 인생을 말하는 시인.
한번 쯤 돌아 보게 만드는 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