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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시 -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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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 --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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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종일 불타는 유전이 떠 있다
땅거미 질 때
벼룩에 물린 자리이듯 마음에 슬픔이 톡, 톡 불거진다
식어버린 고깃국에 엉긴 기름덩이 같은 구름이 떠 있다
물집 잡힌 마음이 혼자 쓰라리다
몇 장 읽다 팽개쳐둔 책들이 흐트러진
방은 여전하리라
낡은 돛배 같은 육신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무엇일까
생의 반은
이미 떠나버린 협궤 열차와 같이 지나갔다
고집스럽게 구두 뒤축에 달라붙는 기억들을 끌어 안고
남은 반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은 잘못 든 길을 헤매이느라
하루를 고스란히 보내고 말았다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일그러뜨린다
오, 무거운 것이 어디 배낭 뿐이랴
지금 나는 삶의 경계에 서 있다
무엇엔가 홀린 듯 빨려들어 걸어온 이 길!
미로인 저 길을
내 육체로 삼으려고 한다
흠집 많은 마음이 자꾸 멀미를 한다
.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 문학과지성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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