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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toba 분류

[펌] 위니펙 | 캐나다 견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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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하늘 작성
  •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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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인터넷에서 재미있게 읽은 한 학생의 위니펙 방문기를 옮겨왔습니다. 잠시 캐나다를 횡단하면서 위니펙에 들러 본 것을 쓴 글로 글 일부에서 매니토바주에 대해 잘 못 이해를 한 것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위니펙에 대한 첫인상에 대한 소개 글로 좋을 것 같아서 옮겨왔습니다. 

- 글을 읽기 전에 이 사실을 알고 읽어 주세요. 

1. 루이 리엘 : 매니토바주의 아버지라 불리우며, 매니토바주가 성립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67년 영국령 북미법에 의해 노바스코샤·뉴브런즈윅·퀘벡·온타리오가 통합되어 캐나다 연방을 형성한후 미국과 마찬가지로 캐나다도 서부로의 팽창과 국내발전에 착수했다. 그러나 영국인과 프랑스인 사이의 갈등이 19세기가 끝날 무렵까지도 계속되어 캐나다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다. 서부에서 일어난 프랑스인들의 반란은 실패로 끝났으나 지도자 루이 리엘은 순교자이며 영웅으로 받들어졌다. 이 반란의 결과로 캐나다 연방정부에서는 매니토바주를 설립하고 연방에도 가입을 허용했다. 

2. Winnie the pooh - 곰 이름에서 위니펙(Winnipeg)이란 이름을 가져온 것이 아니고, 위니펙(Winnipeg)시의 이름에서 곰 이름(Winnie : Winnipeg의 애칭)을 따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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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펙 | 캐나다 견문록  2005.05.08 19:41  
  
woomi9  카페매니저  http://cafe.naver.com/hicanada/24  

시내 (99. 8. 6) 

새벽 05:45에 위니펙에 도착했다. 내 시계는 아직 04:45이고 버스 승객도 다 내리지 않길래 - 버스는 위니펙에서 잠시 쉬었다 동쪽으로도 가는 버스였다. - 화장실 갔다 오면서 경비원에게 물었더니 위니펙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동쪽으로 가면 표준시간이 바뀌어 1시간 빨라진다는 것을 깜박했다. 버스에 후다닥 올라서 짐 내리고 수하물 맏긴 것 봤더니 벌써 내려져 있었다. 버스 터미널은 공사중인지라 어수선했지만 한 가운데에 경비원 자리가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질도 하고 세수도 하고, 물론 면도도 하였다. 현지인들은 웃옷을 다 벗은채 겨드랑이에 향수까지 뿌리는 사람도 있었다. 

유스호스텔은 버스 터미널에서 얼마 되지 않는다는 가이드북 가르침대로 찾아갔다. 가던 도중에 주유소 식품점에 들러서 아침거리(우유, 달걀, 식빵)도 샀다. 호스텔은 찾기 쉬웠지만 문제는 너무 일찍 와 문을 열지 않은 것이었다. 혹시 뒷문은 열렸나 하고 뒤로 가보고 건물 뒤 2층 베란다에도 가 보았으나 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베란다 테이블에 앉아 간단한 요기를 하고 혹시 일찍 나오는 사람이 있나 하고 정문에서 기다렸다. 정문 앞 잔디밭에 한 청년이 들어누워 있길래 우리와 같은 처지인가 보다 했는데 그 청년은 시내버스가 오자 타고 사라졌다. 버스 기다리는 방식도 가지가지였다. 

추위에 떨다가 07:00가 넘어서 들어갔다. 아직 빈 침대가 나오지 않아 따뜻한 휴게실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있는 관광 자료를 훑어 보며 오늘의 일정을 생각해 보았다. 민구는 피곤한지 한쪽 소파를 다 차지한채 잠자고 있었다. 잠시후 직원이 내준 침대는 2층 침실에 딸려있는 2인용 독방이었다. 문을 열면 다른 침실이 있어 독방이라 하기에는 뭣해도 베니어판으로 된 칸막이가 있기는 있었다. 전에 창고로 사용했는지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호스텔에서 원기를 회복한 뒤 주의사당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거대한 돔 형태의 지붕을 가진 의사당 건물은 주위의 정원과 어우러져 그림과 같이 아름답고 웅장했다. 빨간색 2층 관광버스가 와 관광객을 내려 놓고 가기도 하였다. 계단에 정원 투어 시간표가 있어 기다려 봤으나 가이드는 오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 정문으로 들어가 안내직원에게 둘러보겠다고 하니까 방금 투어가 출발했다며 어서 가보라고 손가락을 가리켰다. 가이드는 관광객에게 안내를 하다가 우리가 뒤에 다가서자 어디서 왔냐고 붇고는 우리말로 된 안내 팜플랫을 하나 주었다. 가이드가 말하는 내용이 다 우리말로 적혀 있어서 영어를 모르는 이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른 주의 주의사당 견학에서는 이런 점이 부족했는데 매니토바주는 역시 세세한 곳에도 신경을 쓰고 있었다. 
  
PAN AM 대회가 열리는 위니펙은 축제분위기다. 주의사당도 엠블럼으로 장식하였다. 
  
의사당 건물은 매니토바 주에서만 나오는 돌로 지었는데 그 돌에는 화석도 보였다. 리자이나에 있는 의사당도 돔이 있어서 중앙 로비에서 천정을 보면 높은 공간이 보였는데 여기도 그랬다. 매니토바 삶들은 쳥색을 좋아하는지 청색을 많이 칠해 놓았고 1층 로비에는 거대한 들소 상을 만들어 놓았다. 복도에는 여러 사람의 초상을 걸어 놓았고 그 중에는 정착 초기 백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인디언 추장의 초상화도 있었다. 이들 초상화는 대부분 1920년대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우리를 이방 저방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 주었고 방청석에 앉아서 의회가 열리는 방도 구경하였다. 마지막으로 가이드는 우리를 1층 Info로 데리고 와 작은 뺏지를 선물로 하나씩 나눠주고 가버렸다. Info에서 쿠폰을 하나 구해 가방에 넣고 도움이 될만한 자료도 많이 뽑아 넣었다. 
  
건물 밖에는 많은 동상이 있었다. 1812년 위니펙에 처음 왔다는 Selkirk, 빅토리아 여왕, - 이 여왕의 동상은 주의사당마다 볼 수 있다. - 그리고 강가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루이 리엘의 머리가 많은 공간을 차지한채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의사당 옆 아름다운 Government House도 보았다. 마치 아름답고 아담한 호텔처럼 보이는 이 건물은 지금은 부지사 사택이라니 부지사가 되고 싶었다. 

정원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아시니보인 강변 산책로가 나온다. 우리 나라는 강변을 모두 자동차 도로로 만들어 버렸지만 여기는 전부 산책로로 만들어 놓았다. 나무도 많고 벤치도 많았다. 강물은 록키 산맥의 맑은 물을 보았던 우리에게 깨끗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리자이나와 위니펙 수돗물은 그냥 마실 때마다 약간의 소독약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강 위에 만든 다리도 아름다움을 최대한 발휘하여 온통 관광지로 만든 듯 하였다. Forks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많아졌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들도 보였다. 

Forks에 가는 도중에 Dalnavert가 있다 하여 강변에서 올라와 주택지 도로를 걸었다. 조금전 강변에서 점심으로 싸온 토스트를 먹었지만 수퍼마켓이 보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 나라 수퍼처럼 주택지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수퍼였는데 우리 나라 농심 신라면이 보였다. 값은 비싸 99센트 - 대형 수퍼나 China town에서는 라면이 75센트 하는데 바가지 썼다. - 나 받았지만 6개를 집어들고 다른 것도 많이 집었다. 계산을 하려는데 오직 현찰만 받는 곳이었다. 마침 지갑에는 현찰이 $5만 있고 여행자 수표만 있어 동전까지 톡톡 털어 라면만 샀다. 

낡은 목조건물 Dalnavert은 매니토바 수상을 지낸 맥도날드가 살던 집이리고 하는데 관광지로 꾸며 외화벌이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입장료가 $2이지만 아까 라면 사느라고 현찰 다 털리고 $100짜리 여행자 수표 뿐이었다. 직원은 전화를 하여 잔돈을 가져오라 하였고 나는 이 집 보려고 한국에서 왔다고 허풍도 털며 잠시 있으니 여자 한명이 잔돈을 갖고 왔다. 집을 그냥 둘러 보는 줄 알았는데 200년전의 복장을 한 미녀가 앞장서서 안내를 해 주었다. 따라 다니는 사람은 영어도 서투른 한국인 2명 뿐인데 이것저것 다 설명해 주면서 지하실 아이스크림 제조기에서 다락방까지 다 보여 주었다. 맥도날드가 당시의 수준으로 봐 호화판으로 살았다는 것을 배우고 나왔다. 

다시 강변 산책로를 걸어 Forks에 다다렀다. 보우트 승선장, 누군가 노래 부르고 있는 야외 공연장이 띄었지만 우뚝 솟은 전망대가 인상적이었다. 햇빛이 강해 무더운 계단보다는 시원한 승강기가 더 좋았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전망대에서 서니 강 건너 푸른 숲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은 전부 공원으로 마침 PAN Am 대회 - 동양으로 치면 아시언 게임 같은 것으로 미대륙 국가들이 모인다. 미국과 쿠바가 선두를 다툰다. - 가 열리는 중인지라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전망대를 내려가 Forks Market에서 과일을 사 갖고 나와 공원에서 맛있게 먹었다. 수박 - 모양이 타원형인데 우리 나라 수박보다 3배는 큰 것 같다. - 1통이 $5도 안되는데 다 먹을 자신이 없어 사지 않았다. 처음 보는 과일도 많았는데 먹을줄 몰라 사지 않았다. 

이번에는 레드강을 따라 북쪽으로 오르면서 인디언 전통 가옥 티피와 야외 음악당을 지나쳤다. 야외 음악당에서는 누군가 기타를 치며 고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보아주는 관중은 20여명도 되지 않았다. 강 건너 숲 속으로 하얀 생보니파스 성당이 보였다. 그 성당을 보기 위해 다리를 건너서 이번에는 강을 따라 남쪽으로 가야 했다. 다리 위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으나 값이 비사 먹지는 못했다. 생보니파스 쪽 강변도 건너편 못지 않게 잘 꾸며져 있었으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성당 입구에서 바라본 생보니파스 성당은 너무 아름다웠다. 길 좌우는 온통 묘지였다.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무덤, 비석만 있는 것, 천사의 조각이 있는 것 등등. 거의 대부분이 1세기도 더 된 것들이었다. 성당은 벽만 있을 뿐이었다. 정문으로 들어가 안쪽 벽을 보면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벽돌과 철근이 삐죽삐죽 나와 있는 폐허였다. 1972년에 새로 지은 성당은 원래 성당 안쪽에 공간을 반쯤 차지하고 지었지만 그냥 평범한 성당일 뿐이었다. 아름답게 짓고 싶어도 원래 성당의 아름다움을 해칠까봐 그랬겠지만. 아뭏든 더위에 지친 나그네에게는 좋은 휴식처이기도 하였다. 

성당 남쪽에 있는 생보니파스 박물관에 들어설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루이 리엘의 동상이었다. 그가 여기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 때문에 이 주가 발전해서 그런지 오늘은 그의 동상을 벌써 두번이나 보게 되었다. 하긴 그의 이름을 붙인 호텔이나 식당도 있을 정도이니. 박물관 전시품은 개척 당시 가톨릭 사제들의 비품, 초기 교회의 사진, 종 등이 눈에 듸었다. 초기 교회 내부 모습도 만들었는데 가장 좋은 자리는 총독의 자리로 2층 맨 앞줄에 좋은 의자를 놓아 두었다. 더운 날씨임에도 길내는 에어컨이 거의 되지 않았다. 몇몇 장소에만 에어컨 찬 바람이 나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기도 하였다. 

버스가 있는데도 잘 몰라서 Forks까지 가서 탔다. 오늘 하루 정말 많이 걸었다. 민구의 표정만 봐도 알겠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인류자연사 박물관까지 가 내일 둘러볼 것을 대강 정한 뒤 호스텔 가는 버스에 올랐다. 

위니펙 북부, 레드 강 유람선 (99. 8. 7) 

어제 일찍 돌아와 충분한 휴식을 해서 그럴까 오늘은 일찍 호스텔을 나섰다. 버스 종점인 우크라이나 문화센터(박물관)에서 내렸지만 문을 안 열어 낡은 건물만 보았다. China Town, 밴쿠버 China Town처럼 더럽지는 않으나 건물이 낡고 지저분해 보였다. 중국문화센터 옆에 꾸며진 아주 작은 공원에서 중국풍이 물씬 나는 호수를 둘러 보고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곳 어디에나 세워진 도로 위에 우뚝 만들어 놓은 문도 보았다.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간간이 차들만 지나갈 뿐 행인은 볼 수 없었다. 

인류자연사 박물관은 박물관답지 않게 일반 건물같은 성냥갑 모양이었다. 날씨도 쌀쌀한데 문을 열려면 아직도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안에서 기다릴까 하고 로비에 들어가니까 경비원이 쫒아냈다. 박물관 볼 기분이 안나 오래된 검물이 많다는 Exchange 지역으로 향했다. 100년 이상된 건물들이 거리를 뒤덮고 있는 지역은 마치 내가 10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을 주었다. 하나같이 5층도 넘지 않는 벽돌로 지어진 구식 건물들, 그러나 거리마다 가로수와 가로등이 아름답게 서 있고 거리에 공원을 꾸며 놓아 거리는 아름다웠다. 이 공원에는 Info가 있고 이 지역 walking tour도 한다지만 시간이 일러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햇빛이 아직은 약해 날씨가 덥지 않으니 막 다녀도 힘이 들지 않았다. 

다시 시내로 오는 버스를 타고 Bay에서 내렸다. Bay 이구에 위니펙 버스 노선표가 있어 몇 구간 것을 집어 들었다. 먹을 것 있나 백화점을 둘러 보았지만 옷 종류만 있었다. 위니펙 미술관에 들어가 미술 작품 감상하다가 어제 시간에 늦어 못탄 유람선(Paddlewheel River Rouge Tour)타러 Forks로 향했다. 오늘은 버스 1일권을 샀으니 버스를 마음대로 타 좋았다. Forks로 가던 도중 위니펙역 길 건너편에 있는 Upper Fort Garry Gate에 들렀다. 원래 이 요새는 강변까지였으나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면서 다 헐려 나가고 지금은 문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길 옆으로는 주유소가 턱 가로막고 있어 관광지치고는 천대받는 곳이었다. 관광객도 우리 뿐이었다. 요새벽은 나무였으나 속을 들여보니 돌로 쌓은 벽이 있었다. 인디언의 공격에 살아남기 위해 튼튼하게 쌓은 요새가 지금은 10m도 남지 않아 안타까웠다. 

Forks 공원에는 주말인지라 사람들로 붐볐다. 어제 지나가면서 자세히 안봤는데 오늘 보니까 나무토막으로 집짓는 곳이 있었다. 목재가 풍부한 나라답게 공원 한곳에 벽돌같이 깎아놓은 나무를 한 무더기 쌓아 두었다. 누구는 이글루를 만들고 누구는 요새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담을 만들어 그 담이 만든 그늘에 앉아 있기도 하였다. 우리도 집을 만들기로 하고 나무로 쌍핬는데 두 사람이 들어누을 정도로 큰 집을 짓느라고 반도 못짓고 뱃시간에 맞추어 유람선을 타러 가야 했다. 

유람선 매표소에서 한 사람 값으로 두 사람이 탈 수 있다는 쿠폰을 내밀었으나 오늘이 주말이라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세히 보지 않은 나의 실수였다. 화요일 날 여기 다시 올 때 탈까 하다가 그냥 타기로 하였다. 표를 사고 잠시 기다리니가 런던에서 볼 수 있는 빨간색 2층 버스가 왔다. 유람선이 Forks 근처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줄 알았는데 버스는 레드강 북쪽으로 잠시 달렸다. 거리 주변은 창고만 보일 뿐 어디선가 갱이 나타날듯한 거리의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백인들은 유람선에 타기만 하면 먹는 것으로 시작되는 듯 하였다. 배의 1층은 식당인데 산해진미로 가득차 있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배 2층은 구경하는 전망대인데 10사람도 채 보이지 않았다. 그 중의 2/3는 동양계였고 전부 한국인이었다. 우리도 그랬지만 Forks에서 사온 값싼 과일을 꺼내 씹으면서 경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배는 레드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Forks 근처까지 갔다가 배를 돌려 레드강을 따라 올라갔다. 주변의 어떤 것이 보일 때마다 마이크에서는 안내 방송을 했으나 반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공원을 지날 때는 공원 모든 사람들과 손을 흔들었고, 강변의 별장을 지날 때는 그 집 가족들과 손을 흔들기도 하였다. 우크라이나계 이민이 많은 지역답게 강변 숲 사이로 그리스 정교회 건물이 보이기도 하였다. 숲 속에 삐죽 솟아있는 특이한 모양의 지붕은 인상적이었다. 배는 계속 강을 거슬러 가는데 양안에는 오직 울창한 숲만 보이고 우리는 추워서 실내로 들어가 밖을 쳐다 보았다. 

Forks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 

빨간색 2층버스는 우리를 다시 출발 지범인 Forks로 데려다 주었다. Pan AM 대회가 벌어지는 주말이라 그런지 Forks에는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었다. 맨 뒤에 자동차가 음악을 쿵쿵 틀며 다가왔고 열을 지어가는 흑인들은 한 손에는 창을 들고 이상한 옷차림을 한채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쁜 미녀들만 뽑아 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 뚱보 아줌마에서 초등학생까지 -들이 모두 나와 하는 것이었다.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서서 이야기히디 가는 그런 식이었다. 한쪽에서는 매니토바주 특산품이라는 음식의 시식회가 있었다. 야채에 소스를 뿌려 먹는 것인데 맛이 있어서 또 줄을 섰다. 식용유(Canola Oil)도 요란한 광고 전단과 함께 무료로 나눠 주었다. 2병을 받을 수도 있지만 짐을 많이 만들기 싫어 하나만 받았다. Canola Oil은 유스호스텔 부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용유로 대두유에 비해 지방산이 50% 적어 뚱보가 많은 캐나다에서는 인기있는 식용유였다. 오늘밤 Thunder Bay행 야간버스를 타는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호스텔에 가서 저녁을 든든히 먹고 타야 하니까. 

아시니보인 공원, 인류자연사 박물관 (99. 8. 10) 

이제와는 반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올수록 시침을 한시간 늦게 돌려야만 하였고, 덕분에 1시간을 벌게 되었다. 밴쿠버에서 아침 일찍 갔다가 기다린 경험이 있어서 아예 기다릴 필요없는 공원을 생각해 보았다. 결국 오늘의 첫 행선지는 아시니보인 공원으로 정해졌다. 무거운 짐은 락커에 넣고 카메라, 물통만 작은 가방에 넣고 버스 터미널을 나섰다. 수퍼에서 간단한 아침요기를 사 가방에 넣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도심을 벗어나자 주변에 녹지대가 많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버스가 교외로 나갈수록 나는 공원을 지나칠까 하는 걱정으로 창밖을 유심히 봐야만 하였다. 뒷좌석 한 승객에게 아시니보인 공원이 아직 멀었나고 물었더니 - 이 말은 아시니보인 공원에 닿으면 알려 달라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고 대부분 내릴 때면 알려준다. - 그 청년은 두리번거리다 다오면 말해 주겠다고 하였다. 
  
아시니보인 공원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면 아시니보인 공원 안내판이 있었고 동쪽문이라는 표지판도 서 있었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온통 잔디가 깔려 있고 거대한 나무가 서 있는 공원이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공원 관리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무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었다. Gallery 식당이 작은 언덕 위에 우뚝 서서 잔디밭을 내려 보고 있었지만 아침 일찍 문을 열지는 않았다. 식당인데도 마치 궁전처럼 멋있게 지은 건물이었다. 우리는 잔디밭 속에 외로운 섬처럼 떠있는 테이블로 가 아까 산 우유와 과자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과자로 요기를 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초코렛을 듬뿍 친 과자는 설탕보다 더 달아 피로 회복에는 좋지만 허기를 얼마나 달랠 수 있을는지는 궁금하였다. 
  
English Garden은 말 그대로 영국식 정원인지 - 영국에 가본 적이 없어 무엇이 영국식인지는 모르지만 - 수 많은 꽃으로 지상을 모자이크 그림 그리듯이 꾸며 놓았다. 아침 이른 시간에 벌써 관광객들은 이 정원을 찾아오고 있었고 그 와중에서도 두 명의 정원사는 열심히 꽃들을 가꾸고 있었다. 꽃 향기와 현란한 색깔에 취해 꽃 사이 길로 타박타박 걷다가 허리 숙여 코를 갖다대며 킁킁거리곤 하였다. 

정원을 나와 Leo Moll 조각공원 표지판을 따라 갔다. 숲 속에 자리잡은 Leo Moll 조각공원에는 많은 조각품이 눈길을 끌었다. 조각에는 작은 동판이 작품명과 제작연대를 말해주고 있었다. 인물상이 대부분이었지만 곰이나 사슴과 같은 동물상도 보였다. 동물상은 동물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반해 인물상은 '가족'이라는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부 홀로 서서 쓸쓸한 표정으로 짓고 있었다. 실내 조각실에는 작은 작품들이 많이 있었으나 아직 10;00가 안되어 들어갈 수는 없었고 창밖에서 봐야만 하였다. 건물 주변, 건물 앞 분수대에고 조각이 많았다. 과연 조각공원이라고 이름 붙일만 하였다. 

공원 옆에는 동물원도 자리잡고 있었다. 캘거리 동물원에서는 시간이 없어 다 보지 못했지만 위니펙 동물원은 시간이 많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캘거리 동물원보다 규모는 더 적은 것 같아 보였다. 동물원을 떠나기 직전 출구 근처에 있는 Winnie라는 곰의 동상도 보았다. 이 작은 곰 덕분에 이 도시가 Winnipeg으로 되었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점심 무렵 동물원을 나올 때에는 아침도 과자로 먹은데다 아침부터 내내 걸어다녀 온몸이 지쳤다. 시내 Bay에 들어가 사과 6개($3)와 요플레 두개($0.98)를 집어들고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이태리 음식점이 많다는 Osbougrn Village로 갔다. 가는 도중 버스가 미술관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50% 할인쿠폰도 있던터라 내려서 들어갔다. 미술관 관객은 우리를 포함해 10명도 채 되지 않았고 실내에도 비어있는 공간이 많았다. 그림 주위로 떨어져 있는 공간은 인구밀도가 적은 나라답게 그림밀도도 낮았다. 

아시니보인 강을 건너면서 Osbougrn 거리 주변은 식당과 수퍼가 많이 보였다. 서울로 치면 강북은 주의사당, 미술관, 공원이 있으니까 세종로라 할 수 있고 강남은 식당, 술집 등이 있어 명동 거리라 할 수 있겠다. Papa Georgeis라는 이태리 식당에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이태리 어느 항구의 사진이 실려 있었고 이 식당의 역사를 말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웨이터의 인원수, 금연석 확인을 거쳐 배정받은 좌석은 Osbougrn 거리가 보이는 창가였다. 둘이 $7.60짜리 피자를 시켰고 음식이 나오기 전에 아까 사온 요플레를 종업원이 볼새라 얼른 먹었다. - 봐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우유도 한잔씩 먹고 나온 계산은 세금 포함 $12.08로 패스트푸드 점에서 먹는 것보다 많이 비싼 편은 아니었다. 

오늘도 사스케츈행 야간 버스를 타야겠기에 오후를 어디선가 보내야만 하였다. 전에 아침 일찍 갔다가 외관만 봤던 인류자연사 박물관으로 결정을 봤다. 박물관에 닿은 시간이 15:50이고, 50% 할인 쿠폰도 있던터라 박물관만 보려고 하였다. 지갑을 꺼내면서 요금표를 봤는데 박물관, 마야문명전, 천문관, 과학관, 스포츠관 통합권이 더 쌌다. 야간 버스 시간까지 시간이 많지 않은데도 싼김에 통합권을 덜컹 사 버렸다. 

마야특별전은 특별이 무색하리만큼 날림이었다. 그들이 입던 옷 몇점, 사진이 다였다. 마야인들이 쓰던 소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캐나다 박물관 알맹이는 거의 비슷한 데 여기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공룡 화석, 인디언 생활, 개척 시대의 유물 은 빠짐없이 전시되어 있었다. 색다른 것이 있다면 허드슨 베이 사가 모피를 나르는데 썼던 커다란 범선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 전시장은 천장만 보지 않는다면 박물관이 아니라 어느 항구 도시에 와있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범선 주위로 항구가 있고 화물 상자가 널러져 있고 부두의 술집, 여관, 해운회사 사무실도 있어 들어갈 수 있었다. 배에 오르자 안내 직원이 있다가 
"영어할 줄 아세요>" 
하길래, 조금한다고 하니까 범선에 많은 줄이 있는데 그 줄을 만지지 말라고 하였다. 아마 누군가가 만졌다가 그 커다란 돛이 주르륵 내려오기라도 했었나 보다. 배는 갑판 위만 다닐 수 있었지 선실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옛날 위니펙 시가지의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기칫길이 있고 역마차라도 다닐 것 같은 도로에 나무로 만든 인도를 따라 펼쳐져 있는 상가, 무거운 느낌의 박물관이 아니라 민속촌이나 다름 없었다. 내가 갔던 때는 일부 전시장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었고 공사중이었다. 박물관 외관도 일반 사무실 같은 직육면체 빌딩으로 평소 내가 보아왔던 박물관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물관 지하에는 천문관이 있었다. 천체 망원경으로 별이라도 볼 수 있나 기대했지만 천장에 영화를 비춰주는 극장이었다. 마치 밤하늘을 보는 착각이 들게끔 천장에 별이 반짝이고 은하수가 있고 별똥이 지나가고 그런 식이었다. 거기에다 영화의 재미를 주려고 곰이 친구를 찾아가고 여차여차 식의 줄거리가 펼쳐졌지만 다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새벽부터 다닌 피곤한 몸은 자꾸만 눈을 감게 만들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과학관으로 들어갔다. 마법의 거울, 수 많은 핀 밑으로 손을 넣어 손모양 그리기 등을 해 보았다. 공간도 지하층 하나뿐이었고 내용물도 밴쿠버에 비해 양적, 질적으로 한 수 밑이었다. 문닫을 시간이 임박해서 관람객은 무척 적었다. 문닫는다는 방송을 듣고서도 컴퓨터에 매달려 인터넷을 조금 하다가 나왔다. 다시 1층으로 와 아까부터 민구가 들르고 싶어 했던 스포츠 관에 들어갔다. 야구공도 던져보고, 농구도 해보고. 그러나 여기도 문닫는다니 나가야 했다. 3일간 위니펙을 봤지만 수박 겉핧기만 하고 또 그레이하운드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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